논의에 앞서 학생 권익과 복지를 위해 힘쓰는 디테일 총학생회에 감사드립니다.
이번주 목요일, 각 학생단위의 대표자들이 모여 총학생회와 학생사회의 의제들을 논의하는 전체학생대표자회의가 개최됩니다. 그 첫 번째 의안으로 총학생회의 운영 방향을 포괄적으로 규정하게 될 총노선의 안이 공고되었습니다. 그러나 공고된 총노선의 안과 관련하여 우려되는 부분이 존재하여 학생사회의 일원으로서 반대 의견을 표명하고자 합니다.
디테일에서 작성한 총노선의 안은 총 3개의 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중 세 번째 “사회적 역할이 기대되는 총학생회”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려 합니다. 이 절에서는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지성인으로서 사회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행동해야 할 사회적 책무가 있음을 이야기하며, 이를 위해 총학생회에서 실시한 사업들로 민중총궐기 참가와 세월호·국정화·위안부 관련 활동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런 총학생회의 결정들이 일반 학생들과는 너무나 유리되어서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작년 말 주무열 전 총학생회장께서는 ‘학우들의 의지와 명령’에 따르겠다며 민중총궐기에 참가할 것을 학생회의 이름으로 독려했습니다. 실제로 광화문에는 총학생회의 깃발이 펄럭였고, 이는 이어서 진행된 2차, 3차 민중총궐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학생회의 이름을 빌려 이 민중총궐기에 참가함에 있어 이에 동의하지 않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충분하게 수렴한 적이 있는지 과연 의문이 듭니다. 올해에는 총학생회가 언젠가부터 각종 국정화 반대를 위한 서울대 네트워크, 위안부 합의 무효를 위한 네트워크,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한 네트워크에 소속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절차상으로는 10인 가량의 학생회장들이 참석하는 총운영위원회에서 의결된 사항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총학생회장도, 단과대학의 학생회장도 아닌 평범한 학생의 입장에서 얼마나 이 결정에 자신의 참여권이 보장되었다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많은 학우들이 학생회가 자신을 정치적으로 대변해 주기를 바라면서 디테일에 투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저는 감히 주장해 보겠습니다. 디테일이 공약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것은 광역셔틀이었고, 인권 가이드라인이었고, 다양성을 위한 하나의 움직임이었지,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며, 위안부 합의 무효를 주장하며, 학생회의 이름으로 민중총궐기에 참가할 것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애당초 우리의 정치적 입장을 효과적으로 대변해 줄 사람을 찾을 것이었다면, 우리는 학생회가 아니라 정당과 시민단체를 찾았을 것입니다. 학생회는 우리가 단지 서울대학교의 학생이라는 이유로 자동적이고 강제적으로 소속된 단체이지, 사회적 사안에 대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학생회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학생회가 학생들의 정치적 의사를 대변하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남습니다. 학생사회에는 한 정치적 의제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존재합니다. 이를 하나의 입장으로 ‘단일화’할 정당성은 어디에서 확보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학생사회의 대표자를 선출하거나, 학교의 운영과 관련하여 학생의 입장을 표명해야 하는 경우와 같이 불가피하게 의사를 단일화하여야 할 경우는 물론 존재합니다. 그러나 위안부, 세월호 문제와 같이 학교 밖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학생들의 의사를 단일화할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이러한 의제에 관해서는 학내 구성원들의 의사를 수집하여 “어느 입장이 어느 비율로 존재하며, 어느 입장이 어느 비율로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로 이야기하면 되는 것이지, 다수의 정치적 의견으로 소수의 정치적 의견을 소위 ‘뭉개 버릴’ 정당성을 찾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학생회가 “학내 구성원들의 의견을 열심히 수렴하여 학우들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 말은 이미 학우들의 정치적 입장을 한쪽의 의견으로 단일화해 버리겠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정치적 의사의 단일화가 허용될 수 있는 경우는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정치적 입장을 취하는 것이 유일한 ‘정답’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을 때입니다. 예컨대 과거 한국의 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것은 ‘정답’ 해당되는 것이었으며, 이에 대한 학생회 구성원들의 공감대도 광범위하게 형성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정치 상황에서 민중총궐기에 참가하는 것이 과연 ‘정답’인지, 위안부 합의의 무효를 주장하는 것이 ‘정답’인지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는 학우들이 많을 것입니다. 현대 민주주의는 가치의 다원성을 인정하며 상대방의 정치적 입장을 쉽게 오답으로 몰아가지 않는 자세에 기반해야 합니다. 소수의 의견이 오답이 아니라면, 그리고 의견의 단일화가 필수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우리는 이것을 다수의 의견으로 압도해 버릴 수 없습니다.
한편 이는 대학생들이 사회의 문제들과 마냥 유리되어 있어야 한다는 주장과는 다릅니다. 저는 오히려 대학생들이 지금보다 사회 문제에 대해 더 목소리를 내고 행동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만 학생회가 그 역할을 주도해서는 안 됩니다. 자유로운 개인과 동아리와 학내 단체들로 이루어진 모임을 통해 이에 참여해야 합니다. 국정화 반대를 위한 네트워크,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한 네트워크는 좋은 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학생회장도 부학생회장도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목소리를 내기 원한다면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학생회의 이름을 사용하며, 학생회의 집행력을 단일한 정치적 입장을 지지하는 데 사용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학생회가 학생들이 정치적 의사를 표명할 단체를 만드는 과정을 공평하게 지원할 수는 있어도, 정치적 의사를 단일화하는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총노선에 나타난 문제의식 중 하나는 왜 학생회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학생들의 외면을 받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왜 일반 학생들이 학생회에 대해 생각할 때 곧바로 운동권이 연상되고 그것에서 미묘하게 부정적인 기운이 감도는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것은 학생회가 제 할 일에서 벗어나 다른 곳에 자원을 사용, 혹은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작년 11월 이례적인 선거를 경험한 것도, 디테일이 철저하게 학생들의 권익과 학내 문제 해결에서 그 시작점을 찾았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우리의 학생회는 독재 정권 타도의 자랑스러운 과거를 지니지만, 현대의 사회에서 학생회의 정상적인 역할의 범위가 어디인지에 대해 다시 고민을 시작해야만 합니다.
이상의 논의에 비추어 보았을 때 공표된 총노선을 그대로 인준하는 것을 재고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총학생회에서 진행해 온 정치적 사업들은 단일화 과정에서의 정당성을 여러 측면에서 결여하고 있습니다. 총노선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이러한 모습에 근거한 “사회적 역할이 기대되는 총학생회”라면, 저는 이를 반대하겠습니다. 또한 디테일이 진정으로 다양성을 고민한다면, 학우들의 정치적 의사를 손쉽게 단일한 입장으로 뭉개지 말아 주십시오. 디테일이 진정으로 학생들의 다양성을 보장하기를 원한다면, 학생들의 정치적 입장의 다양성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 주십시오.
이상에 대하여 전학대회에 참석하실 각 학생단위의 대표자 분들께 고려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앞으로 총운영위원회에서 안건을 의결하실 단과대학 학생회장 분들께도 재고하여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