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운동 막 내리기 직전에 쓰는 글

— 대학 공동체가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에 대해

나는 이번 총학생회 선거에 운동권 선본으로 출마한 윤민정 씨를 개인적으로 존경한다.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삶과 행동에서 그의 일관된 열정과 진정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판단하는 체계 하에, 더 나은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길들을 끝내 걸어가는 것에서 마음이 움직임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을 도정근 후보에게서 덜 느낄 수 있다는 점도 나는 개인적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내가 도정근을 지지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윤민정 씨의 정치하는 방식이 우리 공동체의 진보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정근이 서 있는 패러다임에서는 그 방식이 바뀌어 가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정치의 핵심이 사람들의 의견과 의사결정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라면, 이것이 실현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사람을 누름으로써 변화시키는 것이다. 대중적인 압력과 규탄을 가하여 마지못해 입장을 바꾸도록 하는 방식이다.

둘째는 직접 변하도록 하는 것이다. 본인이 스스로 입장을 바꾸거나 스스로 바꾸었다고 생각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무언가 만능의 방식은 없을 것 같다. 더군다나 둘째의 방식만을 생각하는 것은 코웃음당하기 쉬운 스탠스임이 분명하다.

다만 여기에서 나는 우리가 정치하는 공간의 맥락이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움직이고자 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학교의 의사결정권자 – 3,000명의 교원과 직원, 그중에서도 많은 경우 보직에 해당하는 교수들이 된다. 우리가 움직이고자 하는 것은 숫자 3,000의 집단인데, 이들 한 명 한 명이 누구인지 보는 것이다. 이들 중 누군가는 학생들의 표현에 기분 나빠하고, 속이 좁을 수도 있고, 여러 구성원의 입장을 고려하지 못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일을 잘해 보고 싶기도 하며, 본인의 어떤 개성과 생각의 과정과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나는 이 질문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우리 공동체의 끝그림은 무엇인가?

우리 공동체의 구성원을 대대적으로 청산할 수 있는가? 없는가?

궁극적으로 우리는 신뢰가 동작할 수 있는 공동체로 나아가고자 하는가?

공동체의 사람을 그냥 갈아끼울 수 없는 상황에서 인간과 조직의 변화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은 영원한 대치로밖에 귀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결국에 공감과 잠깐 물러서기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은 지난한 과정을 거칠지라도 의견과 태도를 바꿀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생각했다.

반면에 운동권의 패러다임에서 오랫동안 관측되어 왔던 것은 계급적 사고구조에 기반한 단순화와 공감의 결여였다. 윤민정 씨의 정치적 내러티브에도 가치의 경쟁구도를 단순화하여 보는 일관적인 테마가 있다. 특히 여기에서 지워지고 있는 것은 개별성을 가지고 있는, 합리적일 가능성 있는 존재로서의 구성원 모습들이라고 생각했다.

공론장의 발화에서 공동체 구성원들에 대한 변화의 믿음이 소멸했을 때 그 공동체는 보다 이상적인 모습으로 영원히 넘어갈 수 없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변화의 믿음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정치하는 방식이기도 한 것 같다.

그래서, 직설적이지 못하고 타협하는 것 같고, 그들에게 지는 것도 같지만, 우리 공동체가 어떻게 새롭게 관계를 맺게 되고 결론적으로 구성원 모두가 바뀌어 갈 수 있을지를 고민해 보자는 것이다. 여기에는 많은 창의력과 새롭게 생각하는 방식들이 필요하다.